하나님이 부르실 때 출3:1-6 (2010.3.21)

오늘 하나님은 우리와 함께하시며 이 예배를 받으시는 줄 믿으시길 바랍니다. “하나님은 영이시니 예배하는 자는 신령과 진정으로 예배할 지니라” 고 하셨습니다. 하나님은 광대하시고 위대하시기에 우리는 하나님의 영역을 벗어날 수가 없는 존재라는 것을 잊지 마시기를 바랍니다.

다윗은 하나님의 위대하심을 시편 139:6-10절에서 멋진 시로 표현을 했습니다. “내가 주의 신을 떠나 어디로 가며 주의 앞에서 어디로 피하리이까? 내가 하늘에 올라갈 찌라도 거기 계시며 음부에 내 자리를 펼지라도 거기 계시니이다. 내가 새벽 날개를 치며 바다 끝에 가서 거할찌라도 곧 거기서도 주의 손이 나를 인도하시며 주의 오른손이 나를 붙드시리이다.”  이렇게 하나님은 어디서든지 우리와 함께 하시며 우리의 예배를 받으시는 능력의 하나님이신 줄을 기억하시기 바랍니다. .

오늘 우리가 예배 드리면서 생각해 보기를 원하는 것이 있는데 그것은 모세가 호렙산에서 하나님을 만나는 장면입니다. 구약 시대 때는 종종 하나님이 큰 일을 이루실 때마다 하나님의 종들을 산에서 만나 주시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하나님은 아브라함을 모리아 산에서 만나 주셨습니다. 하나님은 시내산에서 모세를 만나 주셨습니다. 하나님은 엘리야를  호렙산에서 만나 주셨습니다. 그러나 신약 시대에 와서는 어떤 특별한 장소와 상관없이 하나님은 우리를 만나 주십니다.

성도 여러분! 지금도 하나님은 자기의 일군을 부르시고 계십니다. 단지 하나님의 자녀로 불러 주시는가 하면 또한 특별한 사명을 맡기시기 위해서 부르십니다. 오늘 말씀에서 모세를 부르시는 하나님을 보시며 하나님이 여러분들에게 일을 맡기시기 위해 부르실 때 하나님의 부름에 응답하시는 여러분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그래서 하나님께 온전히 사로잡혀 쓰임 받는 축복을 붙잡게 되기를 축원합니다.

오늘 말씀을 통하여 우리가 귀한 진리를 붙잡아야 하는데 그것은 바로, 하나님이 일군을 부르실 때 그 일군을 겸손하게 낮추신 다음에 사용하신다는 사실입니다. 하나님은 우리를 부르셔서 특별하게 쓰시려고 할 때가 있습니다. 그 때는 하나님의 때에 맞추어 불러 주십니다. 그리고 사람의 생각이나 방법이 아닙니다. 우리가 모세를 보아도 잘 알 수가 있습니다. 모세는 자신이 쓰임 받을 때가 되었다고 마음속으로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그는 스스로 충성된 지도자가 되려고 자칭 하나님의 부름을 받은 자 같이 행동을 하기 시작했습니다. 그는 사람을 죽입니다. 왜 모세가 그렇게 생각하고 행동했을까요? 왜냐하면 그는 애굽왕인 바로의 공주의 아들의 자격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그는 학식과 명예와 권세가 있었습니다. 그래서 그는 애굽 나라의 왕자의 자격으로서 하나님의 일을 충분히 할 수 있을 것이라고 자부했던 것입니다. 그러나 모세가 자기의 권세와 학식을 가지고 자만심으로 하나님의 일을 하려고 했을 때는 완전히 실패로 끝나고 말았습니다. 사람을 죽이고 내가 무엇을 할 수 있을 것이라는 교만이 마음에 자리 잡고 있을 때는 하나님이 사용해 주시지 않았습니다.

모세는 자기가 가지고 있던 모든 것을 동원하여 이스라엘 백성들을 출애굽 시키려 했던 꿈은 실패로 끝나버렸습니다. 그래서 모세는 미디안 광야로 도망을 갔던 것입니다. 그러나 모세가 그곳에서 40여년 동안 자신의 힘으로 무엇인가를 할 수 있을 것이라고 하던 자만심은 꺾였습니다. 자기의 아집도 꺾였습니다. 자기가 가지고 있던 능력을 의지했던 모든 것이 다 꺾였습니다. 그리고 자기의 힘으로는 아무것도 할 수 없다고 하며 겸손한 자세가 되었습니다. 하나님이 모세를 부르실 때 그의 태도를 보아서도 얼마만큼 그의 교만이 꺾이고 내려 갔는지 알 수 있습니다.  하나님이 모세를 부르실 때 모세는 하나님께 이렇게 대답을 합니다. 주여! “내가 누구관대 바로에게 가며 이스라엘 자손을 애굽에서 인도하여 내게 하리이까?” 모세의 대답을 보니 이제는 내게 할 수 있는 것이 아무것도 없다고 하는 낮아진 모습을 불 수 있습니다.  광야의 40년 동안 그는 자신을 돌아보며 낮아지는 훈련을 받았던 것입니다. 이때 하나님은 모세를 인류 역사에서 없어서는 안될 위대한 지도자로 사용하셨던 것입니다.

성도 여러분! 하나님이 모세를 부르신 것을 보시길 바랍니다. 하나님이 모세가 어떤 상태였을 때 불러 주셨나요? 하나님의 때는 우리의 때와 다르고 하나님의 생각은 우리의 생각과는 다르다는 것을 알 수가 있습니다. 하나님은 모세가 자신의 힘으로 무엇인가를 할 수 있다고 생각할 때는 가만히 계셨습니다. 그럴 때 모세는 trouble maker가 되어 사람을 죽이고 도망을 쳐야 했습니다. 그러나 모세가 40년의 광야 생활을 하며 자신의 무능함을 보았습니다. 그리고 그는 하나님을 찾기 시작한 것입니다. 그러자 하나님은 모세를 불러 주시고 만나 사용해 주신 것입니다. 하나님은 역시 우리도 우리 자신이 무능하다는 것을 깨닫고 하나님을 의지할 때 불러 주시고 사용해 주십니다.

여러분! 이제껏 하나님께 충성 되이 쓰임 받은 하나님의 사람들을 보면 한결같이 공통점이 있다는 것을 발견할 수 있습니다. 그것이 무엇일까요? 바로 겸손하다는 것입니다.

제럴드 무어라는 유명한 피아노 반주자가 있었습니다. 그는 일평생 한 번도 자신의 독주회를 갖지 못하고 단지 유명한 성악가들을 위해 반주만 해 주던 사람입니다. 그는 늘 자기가 하는 반주가 유명한 성악가들의 노래에 누를 끼치지는 않았는지 염려했다고 합니다. 그리고 한 때 자신의 피아노 소리로 인해 성악가들의 목소리가 눌림을 당하지는 않았는지 미안한 마음을 가지고 살았다고 합니다. 한번은 이렇게 겸손하고 위대한 반주자를 위해 마련된 특벌한 콘서트가 있었다고 합니다. 이 콘서트에서도 그는 여전히 유명한 성악가들의 노래를 돕는 반주자임을 잊지 않았다고 합니다. 그는 유명한 피아니스트는 아닐지 모르지만 위대한 반주자임에는 틀림 없습니다.

우리는 겸손한 사람하면 “그는 흥하여야 하겠고 나는 쇠하여야 하리라”(요 3:30). 라고 말했던 세례 요한을 떠올릴 수가 있습니다. 그는 예수님이 드러나야 하며 자신은 그림자 같이 사라져야 한다고 부르짖었던 사람입니다. 또한 친구 다윗을 향해 “너는 이스라엘 왕이 되고 나는 네 다음이 될 것을 내 부친 사울도 안다”(삼상 23:17)고 했던 겸손한 왕자 요나단도 생각할 수 있습니다. 이들은 자신의 명예나 욕심을 위해 살기보다는 다른 사람을 세우기 위해 자신을 낮춘 사람들입니다. 이런 사람들이 많아질 때 그들이 속한 공동체는 하나님이 원하시는 나라가 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교회에서도 이런 사람이 필요합니다. 또한 우리 사회에서도 이런 사람들이 필요합니다.

우리는 늘 자신에게 이런 질문을하며 산다면 하나님이 쓰시는 겸손한 사람이 될 수 있을 것입니다. “지금 나는 교회에서나 직장에서 어떤 자세로 살고 있는가?”” 그저 내 만족만을 위해서 또는 내 명예만을 위해 일하고 있지는 않은가?” 하나님은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능하신 손 아래서 겸손하라 때가 되면 너희를 높이시리라”(벧전 5:6).

성도 여러분! 여러분들은 작은 새들만이 지저귀며 노래를 할 줄 안다는 사실을 알고 계시나요? 새들 가운데는 아름다운 소리로 지저귀는 새들도 있습니다. 그러나 모든 새들이 다 노래를 부를 수 있는 것이 아닙니다. 독수리나 칠면조나 타조는 노래를 부르지 못합니다. 반면 작은 참새들이나 가냘픈 카나리아 같은 새들만이 노래를 부를 줄 압니다.  이처럼 작고 힘이 없는 새들이 아름다운 노래를 부를 수 있듯이, 이 세상에서도 겸손한 성도들만이 하나님을 높이며 찬양할 수 있지 않을까 생각이 듭니다. 참으로 하나님 앞에서 겸손하고 자기 자신이 한없이 연약하게 느껴져야 그의 입에서 하나님을 높이는 찬양의 소리가 나올 수 있습니다.

여러분! 모래가 무엇인지 모르는 사람은 이중에 한 분도 없을 줄 압니다. 그런데 모래는 모래 그 이상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왜냐하면 모래는 우리에게 주는 훌륭한 교훈을 가지고 있기 때문입니다. 모래는 돌 중에서 가장 작지만, 그 쓰임새에 있어선 큰 돌이 모래를 못 따라갑니다. 또한 큰 바위가 모래가 하는 일을 하지 못한다는 것은 아무도 부정할 수 없는 사실입니다. 그러면 모래는 왜 그처럼 이리저리 여러 모양으로 쓰임 받고 있는 것일까요?  그 이유는 작게 쪼개졌기 때문입니다. 즉 다시 말하면 겸손하게 낮아졌기 때문입니다. 모래는 더 이상 내려 갈 수 없을 만큼 부서진 작은 모습을 가지고 있기 때문입니다.

성도 여러분! 여러분은 하나님께 쓰임 받기를 원하시나요? 그러면 모래처럼 쪼개져 낮아지길 바랍니다. 하나님께 쓰임 받기를 원하십니까? 한 번 모래처럼 내려가 보시기를 바랍니다. 왜 사람들이 많은 물질을 가지고 있으면서 하나님께 쓰임 받지 못하는 것일까요? 왜 많이 지식을 가지고 있으면서도 하나님께 쓰임 받지 못하는 것일까요? 왜 가지고 있는 능력은 많은데 하나님께 쓰 임 받지 못하는 것일까요? 그것은 아직 모래처럼 되지 못한 부분들이 있기 때문일 것입니다.

성도 여러분! 사람들도 교만한자를 사귀기를 싫어합니다. 모든 사람들은 겸손한자와 가까이 지내기를 원합니다. 우리 하나님도 마찬가지입니다. 겸손한 자를 좋아하십니다. 눈이 높은 사람, 목이 곧은 사람, 어깨에 힘이 들어가 있는 사람은 원치 않으십니다. 우리 예수님은 위대한 반석이십니다. 즉 큰 바위도 되십니다. 반석이란 어떤 상황에 있다 할지라도 우리를 구원하시고 지켜 주실 수 있는 주님임을 상징하는 이름입니다. 하지만 우리 주님은 또한 모래의 역할을 감당하시는 분이기도 하십니다. 예수님은 모래의 성품을 지닌 겸손한 분이십니다. 예수님은 모래처럼 이땅에 낮은 모습으로 오셨습니다. 또한 모래처럼 낮은 모습으로 사셨습니다. 그리고 우리를 위해 모래처럼 낮은 모습으로 십자가에 달리셨습니다. 그러기에 예수님께서 가신지 2천 년이 넘도록 수많은 사람들이 그를 믿으며 그의 뒤를 따르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를 본받고자 쉬지 않고 노력하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그는 하나님이시면서도 자신을 낮추신 위대한 분이시기 때문입니다.

자! 여러분, 오늘 우리는 호렙산이 아닌 이곳에서 예배를 드리고 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모세를 만나 주신 것과 같이 지금 이 시간 우리를 만나 주시고 계십니다. 그러나 하나님을 만나도 하나님이 원하시는 곳에 쓰임 받지 못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그것은 하나님이 쓰실 수 있도록 모세와 같이 준비가 되어 있지 않기 때문입니다. 모세는 40여년동안 미디안 광야에서 양을 치며 호렙산을 수없이 지나 다녔을 것입니다. 그러나 그때는 하나님의 부름을 받지 못했습니다. 그러나 그가 낮아지고 자신은 하나님 앞에 보잘 것 없는 존재라는 겸손의 옷을 입을 때 비로서 하나님이 불러 주시고 사명을 맡겨 주신 것입니다.

오늘 이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하나님의 음성을 들으신 분들은 하나님께 겸손한 마음으로 물어 보시기를 바랍니다. 하나님, 내가 무엇을 하기를 원하시나요? 왜 나는 교회를 그렇게 수없이 드나 들지만 아직도 나의 모습은 하나님이 쓰시기에 합당하지 못한 것일까? 혹시 모세와 같이 마음이 준비 되지 않아 호렙산 근처를 그렇게 많이 지나 다녔는데도 하나님을 만나지 못한것과 같이 나도 수없이 설교 말씀도 듣고, 성경 공부도 하며, 예배에 참여하고 있지만 하나님의 부름을 받지 못하는 것일까? 왜 마음에는 여전히 냉랭한 찬 바람만 일어나는 것일까? 왜 아직도 나의 생각과 방법만 고집하며 하나님께 쓰임 받지 못하는 자리에 있을까? 우리 자신을 뒤돌아 보는 시간이 되기를 바랍니다. 이왕 예수를 믿고 신앙 생활을 할 바에는 하나님을 위해 열심히 충성하는 하나님의 자녀가 되어야 합니다. 신앙 생활 만큼은 중간이 없어야 합니다. 뜨겁든지 차든지 한쪽을 택해야지 이것도 아니고 저것도 아닌 그런 사람은 하나님이 충성 된 일꾼으로도 부르지도 않으시며 사용하지도 않으십니다. 오늘 이 곳 이 장소에서 이제부터는 하나님께 쓰임 받기를 원하는 간절한 마음으로 여기 계시는 한 사람 한 사람이 겸손으로 준비하시기를 축복합니다.

또한 하나님은 자기 일에 열심인 사람을 부르셔서 사용하신다는 것을 기억하시기를 바랍니다. 하나님은 빈둥빈둥 놀며 자기 일에 충실하지 않는 사람을 일꾼으로 부르지 않으십니다. 모세를 부르신 것을 보시기 바랍니다. 모세는 미디안 광야에서 열심을 다해 장인의 양 떼를 치는 일을 감당하고 있었습니다. 하나님이 그를 부르시는 날도 양 떼를 먹이고 있었습니다. 이것을 보면서 하나님은 열심을 내는 사람을 좋아 하십니다. 자기 일에 열심인 사람은 하나님의 일에도 열심을 낼 수 있습니다. 그러나 자기의 일에 열심을 다하지 않는 사람은 하나님의 일에도 열심을 내지 않게 됩니다. 그렇다고 자기 일에는 열심인데 하나님 일에는 소홀히 해서도 안됩니다. 그 반대로 자기 일에는 소홀히 하며 하나님 일에는 열심을 낸다는 것도 올바른 방법이 아닙니다. 모세와 같이 자기 일에도 열심인 사람이어야 만이 하나님의 일에도 열심을 낼 수 있는 것입니다. 모세는 자기 일에 충실할 때 하나님의 부름을 받았습니다.

미국의 유명한 사업가 카네기라는 사람이 있었습니다. 그는 어느 날 자신의 강철공장을 돌아보다가, 공장에서 일하는 기능공들이 옆도 돌아보지 않고 일에 매달려 열중하는 모습에 깊은 고마움을 느꼈습니다. 그는 당장 그 기능공 중 가장 일에 몰두하고 있는 최고 기술자 한 사람을 불렀습니다. “당신은 우리 회사의 최고 기술자입니다. 오늘부터 이 회사의 사장이 되어주십시오. ” 그것은 농담이 아니었습니다. 이 말을 들은 기능공은 너무 놀라서 말했습니다. “회장님, 저는 회장님의 말씀을 거절하겠습니다. 솔직히 말하자면 저는 제강기술자로서는 누구보다 잘 할 수 있습니다. 대통령도 저는 부럽지 않습니다. 이 분야에서는 제가 대통령이지요. 남들이 뭐라 해도 저는 이러한 생각으로 제 일에 임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회사의 경영은 잘 모릅니다. 그러니 그냥 기술자로서 일하게 해주십시오.” 카네기는 한참 생각하더니 말했습니다. “좋습니다. 다음 달부터 당신의 월급을 대통령의 월급과 똑같이 올려주겠소. 당신은 강철계의 대통령이니까요.” 기능공은 너무 황송하여 몸 둘 바를 몰랐고, 다음 달부터 그 기능공에게 대통령과 같은 액수의 월급이 지급되었다고 합니다.

오늘날 우리도 마찬 가지입니다. 우리의 생활 현장에서 성실히 일하고 있을 때 주님께서 부르십니다. 그러므로 지금의 일에 성실히 일하시기 바랍니다. 공부하면 공부에, 직장에 있으면 직장에, 사업을 하면 사업에 열심을 내시며 또한 하나님을 섬기는 일에도 성실해야 합니다. 그러면 하나님이 그 속에서도 특별한 사명으로 불러 주시고 하나님의 나라를 위해 여러분을 불러 사용해 주실 것입니다.

그런데 하나님은 왜 지금도 한 영혼 한 영혼을 부르시고 계실까요?  단지 구원받고 천국 갈 수 있다는 확신만 가지고 살도록 하기 위해서 불러 주셨을까요?  그것도 한 부분적인 대답은 될 수 있을 것입니다. 그러나 그것이 전부는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하나님은 한 사람 한 사람을 부르실 때 분명하고 뚜렷한 목적이 있어서 불러 주셨습니다. 그리고 그 목적에 합당하도록 열심을 다해 주님을 섬기라고 불러 주시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모세를 불러 주신 목적이 있는데 그것은 하나님의 백성을 섬기도록 하셨던 것입니다. 하나님도 우리를 부르신 목적이 있습니다. 하나님의 교회를 섬기도록 부르신 것입니다. 그리고 아직도 하나님을 알지 못해서 믿지 못하는 자들에게 전도하라고 부르신 것입니다. 그러기에 우리도 하나님의 부름에 합당하도록 쓰임 받아야 합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주님을 의지하며 나에게 맡겨진 일을 묵묵하게 하며 신앙의 자리를 지켜야 합니다.

성도 여러분! 교회들마다 연초에는 봉사하며 충성하는 자들이 많이 생긴다고 합니다. 그런데 시간이 지나면 점점 열정은 사라지고 불평과 회의로 가득차는 사람들이 생긴다고 합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나에게 맡겨진 사명을 강철 회사의 최고 기술자의 마음의 자세처럼 주를 위해 살고자 결단하고 또한 나의 이웃을 위해서 하는 봉사하고자 한다면 하나님께서는 그런 사람들에게 천국의 특별한 사명자로 대우해 주실 것입니다.

성도의 인생에 가장 보람 있고 행복한 삶은 하나님께 쓰임 받을  때입니다. 성도가 하나님의 영광을 위하여 살아가게 될 때, 세상에서도 형통하게 되고 하나님의 나라에서는 영원한 생명을 얻게 됩니다. 인간은 이 세상에서 사는 동안만이 하나님을 위하여 일할 수 있는 유일한  기회 입니다. 만일 성도가 세상 사는 동안에 하나님의 일을 위하여 쓰임 받지 못하고 맡겨진 일을 하지 못한다면 마지막 때에 심히 부끄러운 모습으로 주님을 만나게 될 것입니다.

세상에서는 권력이 있고, 돈 있고, 지식 있고, 명예 있고, 건강한  자가 쓰임을 받게 되지만, 그러나 하나님께 쓰임 받는 자는 고전 1:27 이하의 말씀에 세상의 미련한 것들과 세상의 약한 것들, 세상의 천한 것,  그리고 세상의 멸시 받는 것들과 없는 것을 불러  쓰신다고  하였습니다. 이 말은 하나님이 아무쓸모 없는 쓰레기들만 불러서 쓰신다는 말씀이 아닙니다. 하나님 보시기에 낮은 마음을 가지고 쓰임 받기에 합당한 자로 준비한 자들을 말하는 것입니다. 그러기에 오늘 모세를 통하여 우리도 하나님께 쓰임 받기 위하여 우리 자신을 겸손하게 준비 되기를 축원합니다. 여러분! 모세는 바로의 궁전에서 “애굽의 학술을 다 배워 그 말과 행사가 다 능하더라” 고 했습니다. 그러나 모세는 그것을 다 버리고 광야에서 하나님이 원하시는 겸손의 옷을 입을 때 하나님께 부름을 받고 쓰임 받을 수가 있었던 것입니다. 하나님이 가장 싫어하는 것은 교만입니다. 마귀도 교만 때문에 하늘에서 쫓겨 났습니다. 자! 여러분, 오늘 이 시간 이곳에서 우리가 떠날 때는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그런 모습으로 살고자 결단하고 나가게 되기를 축원합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이 부르시는 합당한 일에 쓰임 받는 충성된 일꾼이 되기를 예수님의 이름으로 간절히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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